[재계 인사이드-172] 최근 룩셈부르크 경제부총리를 비롯한 경제사절단이 대거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주한 룩셈부르크 대표부 주재 ‘룩셈부르크: 유럽의 신뢰할 수 있는 데이터 허브’ 세미나는 물론 대한상공회의소, 창업진흥원 등과 다양한 행사가 열렸습니다.
기자가 눈길을 둔 곳은 ‘룩셈부르크-한국 디지털 에셋 서밋’이었습니다. ‘유동성(liquidity)을 위한 민간시장 개방, 벤처캐피털·사모펀드에 새 시대 열리나?’란 주제가 흥미로웠기 때문입니다. 유동성. 금융에서는 자주 쓰는 말이지만 일반인 입장에선 어려운 단어일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해 ‘돈이 돈다’는 뜻입니다. 경제뉴스에서 어떤 기업이 유동성 위기에 빠졌다는 말 들어보셨죠? ‘아, 그럼 그 회사는 돈이 안 돌아 위험하구나’라고 생각하면 쉽습니다.
디지털 에셋 서밋에서는 다양한 금융권 현안을 논의했다.
그런데 사모펀드, 벤처캐피털(VC)에 유동성이 왜 문제가 될까요?
이건 이렇습니다. 통상 사모펀드나 벤처캐피털은 기업에 투자를 합니다. 그런데 필요할 때 돈을 뺄 수가 없습니다. 누가 그만큼의 지분을 사줘야 하는데 적잖은 금액이다 보니 바로바로 거래되기가 쉽지 않습니다. 또 투자기간에 회사가 망할 수도 있을 만큼 위험성이 존재합니다. 그런데 이를 한국거래소에서 주식 매매하듯이 쉽게 거래할 수 있다면요? 그것도 국적을 따질 필요 없이요.
이날 서밋에서는 이런 아이디어를 현실화시킬 룩셈부르크 소재 신생 핀테크 업체 VNX 익스체인지의 알렉산더 트카첸코 대표가 나왔습니다. 기자가 룩셈부르크 현지 취재 때만 만난 바 있어 구면입니다. 다른 패널들도 하나같이 관련 시장에서 전문가로 인정받는 이들이었습니다. 유럽연합(EU) 국가들이 출자해 만든 유럽투자기금(EIF)의 벤처투자 담당 니탄 파탁 유닛장, 스카이프 창업 멤버로 유명한 마이클 잭슨 맹그로브캐피털 파트너를 비롯해 한국과 실리콘밸리 등에서 활동하는 BRV캐피털의 윤관 대표, 이스라엘의 대표 벤처캐피털인 요즈마그룹코리아의 황환익 사장이 주인공입니다.
이들은 VNX 사업모델을 중심으로 과연 일반인도 국적을 불문하고 소액 벤처투자 가능할지 여부를 두고 토론을 했는데요. ‘벤처투자의 대중화·민주화가 빈부 격차를 오히려 줄일 수 있다’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자동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등 꽤 흥미로운 얘기들이 많이 오갔습니다. 혼자 듣기 아까워 지면 중계로 여러분께도 소개해 드리렵니다.
사회자 : 우선 VNX 소개 바란다.
알렉산더 트카첸코 대표 : VC 등 전문 투자 회사는 펀드를 조성해 기업에 투자한다. 그런데 문제는 지분투자한 벤처는 3~5년, 일반기업은 길게는 10년 이상 돈이 묶인다. 더 좋은 투자처가 있어 지분을 빼려 해도 쉽지 않다. 룩셈부르크는 유럽 1위 펀드 발행시장이다. 주변에 이런 상황에 처한 이들을 너무 많이 봐왔다. 그래서 펀드 자산을 바탕으로 가상화폐를 발행해서 이를 거래하는 방식을 떠올렸다. 블록체인 기반 디지털 자산 시장(digital asset marketplace)이다. 가상화폐를 사는 순간 국적 불문 일반인도 소액으로 벤처투자를 하는 효과가 생긴다. VC나 사모펀드는 자금 회전의 숨통이 트일 수 있다. 이러면 좀더 다양하고 많은 거래가 만들어지면서 금융 생태계가 보다 활성화될 수 있다.
윤관 대표 : 20년간 벤처투자를 해온 입장에서 상당히 가려운 곳을 잘 짚었다고 본다. 사실 이 분야는 배타적이다. 일반인이 비상장 회사에 접근하는 건 굉장히 어렵다. 그러다 보니 VC 심사역이나 펀드매니저 역할이 상당히 중요하다. 책임감을 가지고 제한돼 있는 정보를 바탕으로 투자해야 한다. 그리고 이후 투자의 결실, 즉 엑시트(자금 회수)까지 상당 기간 인내해야 한다. 그 사이 경영 참여, 조언 등 다양한 활동도 병행해야 한다. 만약 더 많은 사람들이 투명한 기업 정보를 공유하며 쉽게 지분을 거래할 수 있다면 정보의 비대칭성이 상당히 줄어들고 벤처 생태계가 활성화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지금 비트코인도 투기, 도박이라고 보는 시각이 많을 정도로 규제 당국이나 일반인 시각은 그리 우호적이지 않다. 시간은 걸릴 것이다.
마이클 잭슨 파트너 : 그럼에도 금융 산업에서 민주화는 꼭 필요하다. 시장에 누구나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윤 대표가 얘기한 대로 정보의 비대칭성은 상위 1%의 배만 더 불려줄 뿐이다. 불평등이 강화된다는 말이다. 스카이프를 처음 만들 때 보다 많은 사람들이 더 싸게, 더 쉽게 영상통화를 하도록 유도했다. 지금 활성화된 스마트폰 영상통화는 그 결과물이다. 얼마나 많은 변화를 이끌었나. 이처럼 벤처투자 쪽에서도 더 많은 투자자가 참여할 수 있도록 끌어와야 한다. VNX가 필요한 이유다. 리스크는 적고 유동성 풍부한 시장을 만들 수 있다.
황환익 사장 : 지금 기술은 빠르게 진보하고 있다. 단 변수는 각국 정부다. 각 규제 당국은 관련 규제를 만들려 하고 있다. 핀테크 개발 속도만큼 정부 당국의 산업 이해 속도가 같이 따라와줘야 이 시장이 만들어질 수 있다.
니탄 파탁 유닛장 : VNX가 만들어진 배경에는 충분히 공감한다. 그 결과물이 매우 궁금해진다. 기관투자가 입장에서는 많은 재원을 가지고 있다. EIF의 경우 40억유로를 200개 펀드에 나눠 담기도 한다. 다만 6~7년 후 자본 회수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래서 이제는 보다 혁신적인 방식을 논의할 때다.
사회자 : 지금도 크라우드펀딩 등 대체투자는 각광받고 있긴 하다. 좀 더 대체투자가 활성화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잭슨 파트너 : 크라우드펀딩에 대한 수요는 꾸준히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블록체인 기술이 가세한다면 좀더 진보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투자이력을 관리할 수 있고 누구나 가상화폐를 통해 간접투자를 할 수 있게 되니 말이다.
윤 대표 : 이때 중요한 것은 정보가 얼마나 가치 있고 믿을 만한지다. 가령 VNX가 가동됐다고 치자. 개인투자자 입장에서는 어떤 펀드가 좋은 펀드인지 가려내기 쉽지 않다. 또 소개대로 투자했는데 실적이 나빠져 수익률이 떨어질 수도 있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자연스레 고객이 떠나간다. 펀드매니저, 언론 등이 적극 나서 보다 정보를 투명하게 만들어줘야 하고 플랫폼 역시 이런 분위기가 형성될 수 있게 해야 VC 대중화가 힘을 받을 수 있다.
파탁 유닛장 : VC의 대중화·민주화 얘기를 많이 했는데 내가 보기엔 여기에 자동화가 필수다. 최근 VC도 인공지능(AI)으로 운용하는 식의 자동화 시도가 다양하게 이뤄지고 있다. 일반인이 아주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물론 자동으로 수익률 관리, 손절 등을 해주는 자동화 모델이 등장한다면 결과적으로 새로운 유형의 투자자를 끌어들일 수 있을 것이다.
황 사장 : 외국에서는 펀드 지분을 사고파는 세컨더리 시장이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이는 전문 업체 간 거래이지 일반인까지 개방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좀 더 작은 규모의 펀드 단위도 VNX 같은 플랫폼에서 거래될 수 있게 하는 것도 방법이 아닐까 싶다.
사회자 : VNX 같은 모델이 활성화되면 어떻게 금융 생태계가 또 바뀔까.
트카첸코 대표 : 일단 거래가 많이 이뤄지면 데이터가 쌓이는데 개인적으로 빅데이터 분석, 관리 시장이 폭발적으로 커질 것으로 본다. 거래 데이터를 바탕으로 새로운 파생상품이 또 나오게 되고 투자자, 유동성 공급자(LP) 등 다양한 사람들의 정보가 공개되면서 이들 사이에서 또 다른 금융 프로젝트를 도모하는 팀을 자동으로 만들어주는 사업모델도 등장할 것 같다. 3~5년 후에는 VNX가 데이터 관리 회사로 진화하지 않을까 싶다.
윤 대표 : 데이터 회사로 바뀔 것이란 전망은 매우 흥미롭다. 투자를 할 때 질 좋은 정보에 대한 접근성, 두 번째는 분석하는 것이다. 사실 같은 회사를 두고도 가치평가(밸류에이션)를 누가 하느냐에 따라 그 회사의 잠재력이 달라진다. 구글이 투자할 때 일반 금융회사보다 매우 높게 인수금액을 제시할 때가 많은데 구글 입장에서는 전략적으로 꼭 필요한 기술이나 분야를 선점하고 있다는 걸 중시해서다. 미래를 선점한다는 말이다. 결국 데이터 기반으로 수익화에 꼭 필요한 가치환산 능력을 보유하는 것이 중요하다. 얼마나 넓고 깊게 보느냐가 관건이다.
파탁 유닛장 : VNX 모델이 만약 활성화돼 데이터가 가치있게 쌓이려면 무엇보다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투명한 원칙을 제시하고 시장 참여자가 이를 준수해야 한다. 새로운 펀드를 조성하고 투자금을 유치하고 또 투자하고 회수하는 모델을 모색하고 있는데 앞으로 계속 논의하다 보면 새로운 국면을 맞이 할 수 있을 것 같다.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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