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서 처음 열린 ‘글로벌벤처서밋’…한국 블록체인에 ‘확’ 꽂힌 룩셈부르크

지난 11월 20일 EU(유럽연합) 룩셈부르크에서 열린 ‘글로벌벤처서밋’. 전 세계에서 모인 1000여명 벤처업계 관계자들이 주목한 메인 행사 주인공은 룩셈부르크 핀테크 기업 VNX익스체인지(이하 VNX)와 한국 블록체인 기업 스트리미(Streami)였다. 이날 VNX는 스트리미에 300만유로(약 39억원)를 투자하는 협약을 맺었다. 룩셈부르크가 정부 차원에서 핀테크 육성정책을 내건 후 한국과 룩셈부르크 간 핀테크 교류 첫 사례다 보니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글로벌벤처서밋’은 실리콘밸리에서 열리던 대규모 벤처 페스티벌이다. 유럽에서는 처음 열려 그 의미를 더했다.

▶이번 투자 의미, 배경은

▷룩 정부 차원 핀테크 육성정책 첫 결실

룩셈부르크는 인구는 60만명가량이지만 1인당 GDP가 11만달러에 달하는 세계 1위 부자 국가다. 독일, 벨기에, 네덜란드 사이에 위치한 전략적 요충지다. 1·2차 세계대전 때 군수물자 등을 생산하면서 철강이 주력 산업이 됐다. 아르셀로미탈 본사가 룩셈부르크에 있는 배경이다.

이후 철강산업이 일본, 한국 등의 도전을 받으며 쇠퇴할 기미가 보이자 룩셈부르크는 국가 차원에서 전략적으로 은행산업을 키웠다. 2019년 2월 기준 29개국 136개 국제은행이 영업 중이다. 중국계 은행만 7개에 달한다. 룩셈부르크에서 송금할 때의 수수료율은 유럽에서 가장 낮은 약 1%대다. 덕분에 부자들이 줄지어 이주해왔다. 더불어 룩셈부르크는 자산 운용, 뮤추얼펀드(유럽 내 발행금액·횟수 모두 1위) 천국으로 급부상했다.

그러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후 상황이 달라졌다. 유럽계 은행들이 연달아 문을 닫으면서 룩셈부르크 정부 한숨이 깊어졌다. 이후 정부는 핀테크, 우주항공 등을 차세대 먹거리 산업으로 지목하고 적극적인 육성 전략을 펼치기 시작했다.

룩셈부르크 재정부, 상공회의소 등이 주축이 돼 핀테크 지원센터 ‘LHoFT’를 가동한 배경이다. LHoFT는 법인 설립, 판로 개척, 기술 지원은 물론 부동산 가격이 높기로 소문난 룩셈부르크 시내에서 저렴하게 공유 오피스를 공급하는 등의 지원책을 펼쳤다.

VNX는 룩셈부르크에서 탄생해 LHoFT에도 입주, 유망 기업으로 떠오르는 회사다. 이번 투자가 더욱 의미 있는 것은 룩셈부르크 재정부, LHoFT, VNX 등이 그동안 세계 10위권 암호화폐거래소를 4곳 이상 보유한 한국과 다양한 제휴를 하기 위해 한국 문을 수시로 두드려 일궈낸 성과이기 때문이다. 지난 7월에는 이들 기관과 핀테크 기업이 대거 참여한 룩셈부르크 경제사절단이 한국을 방문해 투자처를 찾기도 했다.

당시 VNX는 ‘룩셈부르크-한국 디지털 에셋 서밋’을 주재했다. ‘유동성(liquidity)을 위한 민간시장 개방, 벤처캐피털(VC)·사모펀드에 새 시대 열리나?’란 주제로 좌담회도 열었다.

EU 국가들이 출자해 만든 유럽투자기금(EIF)의 벤처투자 담당 니탄 파탁 유닛장, 스카이프 창업 멤버로 유명한 마이클 잭슨 맹그로브캐피털 파트너, 한국과 실리콘밸리 등에서 활동하는 BRV캐피털의 윤관 대표, 이스라엘의 대표 벤처캐피털인 요즈마그룹코리아의 황환익 사장 등이 자리를 함께했다. 이때 다양한 한국 블록체인 기업과 인연을 맺었다. 특히 국내 3대 암호화폐거래소 중 하나인 ‘고팍스’, 법 집행 기관을 위한 암호화폐 보관 서비스 다스크(DASK)를 운영하는 스트리미와 만나 다양한 논의를 진행했고 이번 제휴로까지 이어졌다.

VNX와 스트리미 제휴는 룩셈부르크 현지에서도 상당한 화제였다.

이날 행사장에는 피에르 그라메냐(Pierre Gramegna) 룩셈부르크 재정부 장관이 이례적으로 참석해 “VNX는 LhoFT의 성공 사례 중 하나”라며 “지금 공표된 한국 기업과의 거래는 핀테크가 전 세계 모든 이들을 하나로 묶어주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연설했다. 우리 정부 쪽에서는 박인규 주벨기에 유럽연합대사관 공사가 자리를 함께하고 “이번 제휴를 계기로 룩셈부르크가 유럽의 실리콘밸리로 떠오를 수 있는 초석이 됐다”고 거들었다.

▶블록체인 제휴 방식 눈길

▷스트리미 전환사채 투자수익을 토큰으로

이번 VNX와 스트리미 간 제휴 방식은 단순히 VNX가 스트리미에 투자하는 방식이 아니다. 스트리미가 발행한 전환사채에 대한 투자수익을 기반으로 ABT(asset backed token·자산 유동화 토큰)를 발행하는 방식이다. 이를 거래 플랫폼인 VNX에서 주식을 사고팔듯이 거래하도록 하겠다는 계획이다.

알렉산더 트카첸코 VNX 창업자 겸 대표는 “유럽 소재 벤처캐피털 업계의 자본 유치 방식을 완전히 바꾼 방식”이라고 운을 뗀 후 “쉽게 말해 자산을 토큰으로 쪼개고 이 토큰을 유통시장에서 거래 가능케 함으로써 사적 자본시장(private capital market)을 변모시키는 역할을 한다. 발전 가능성이 높은 스트리미 전환사채를 일반인이 사기는 힘들지만, 이제 VNX 거래소에서 어렵지 않게 살 수 있는 길이 열렸다”고 소개했다.

이런 접근 방식이 가능한 이유는 룩셈부르크의 규제 환경과도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룩셈부르크는 올해 2월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거래와 송금에 대해 기존 은행 거래와 동일한 법적 효력을 갖도록 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이른바 ‘Bill 7363’ 법안이다. 이전에도 룩셈부르크는 2014년 2월 유럽 최초로 암호화폐 거래를 허용했는가 하면 2016년 4월에는 유럽 최초로 암호화폐거래소를 지불 기관으로 인가해줬다. 이 법안 통과 후 비트스탬프가 유럽 최초 합법 암호화폐 거래 플랫폼이 됐다.

더불어 VNX는 앞으로도 펀드 유동화를 위해 토큰을 발행하겠다고 밝혔다.

알렉산더 대표는 “룩셈부르크는 한 국가에서 등록되면 다른 유럽연합 국가에서 판매가 가능한 유럽뮤추얼펀드(UCITS) 발행 시장 규모만 2조5000억달러(약 2830조원)에 달하는 펀드 천국이다. 그런데 정작 펀드 운용 기간이 정해져 있다 보니 약정 기간 내 팔 수 없거나 벤처기업이 커가기를 기다리는 상황에서 현금흐름에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많았다. 이런 펀드를 토큰처럼 쪼개서 사고팔 수 있게 하는 것은 일종의 벤처투자 민주화를 이뤄낼 수 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방식에 대해 투자업계와 학계도 비상한 관심을 보낸다. 니탄 파탁 유닛장은 “EIF는 40억유로를 200개 펀드에 나눠 담아 투자하는데 6~7년 후 자본 회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보다 혁신적인 유동화 방안이 나온다면 적극 도입할지 여부를 검토해보겠다”고 말했다. 라두 스테이트 룩셈부르크대 SnT SEDAN Group 수장 겸 교수는 “한국 암호화폐거래소의 기술력, 유동화 경험 등이 룩셈부르크 핀테크 회사와 연계됐을 때 시너지 효과가 클 것”이라며 기대감을 표했다.

인터뷰 | 이준행 스트리미 대표

암호화폐 합법 룩셈부르크, EU 진출 전기 마련

Q 이번 제휴는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인가.

A 기본적으로 한국 스타트업이 해외 펀드 투자를 받는 구조와 다를 바가 없다. 다만 한 가지 특이한 점은 VNX라는,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플랫폼을 통해서 투자를 받는다는 것이다.

벤처투자는 투자금액 자체가 크고 개인투자자가 접근하기 힘든 시장이다. VNX는 이 문제를 디지털 자산 시장을 만들어 해결하고자 한다는 데 공감이 많이 갔다. 또한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함으로써 적격투자자 인증만 완료한다면 국경 제한 없이 세계 어디에서나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도 매력적이었다. 이번 제휴 덕분에 스트리미는 VNX 플랫폼을 통해 유럽 벤처캐피털 시장에서 펀딩도 받을 수 있게 됐다. 이는 앞으로 한국의 유망한 스타트업들이 유럽에서 보다 쉽게 투자를 유치할 수 있는 실마리가 될 것이다. 시장 참여자 모두가 윈윈할 수 있는 구조다.

Q 다른 국가도 많은데 왜 룩셈부르크였나.

A 경제사절단 방한 때 우연히 만나 시작한 인연이다. 룩셈부르크에 대한 기존 지식은 유럽에 위치한 다른 나라에 비해 그리 많지 않았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블록체인 관련 사업이 무척 활발했다. EU 최초로 암호화폐 거래 허가를 받은 거래소 비트스탬프, 4000만개가 넘는 암호화폐 지갑을 제공하는 업체 블록체인닷컴 본사가 이곳에 있었다. 현지 업체와 얘기 나눠보니 블록체인, 암호화폐에 대한 생각도 비슷했다. 공통적으로 바라보는 앞으로의 발전 방향 중 하나가 토큰화된 자산(Abt)이었다. 정부가 만든 테두리 안에서 기존 금융기관들과 협업해 만들 수 있다면 충분히 가치 있는 시도라고 공감했다.

Q 최근 국회 정무위에서 암호화폐거래소를 법 테두리에 넣는 특금법이 통과됐는데 스트리미에 미치는 영향은.

A 환영한다. 특금법 통과는 시장 건전성을 높이고 합법적인 암호화폐 사업자로서 안정적인 사업을 진행할 수 있는 기반이 될 것이다. 또한 정식 사업권을 획득한 거래소로서 기존에 갖고 있던 투명하고 안전한 거래소라는 고객 신뢰 이미지를 극대화하는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 기대한다. 보다 공정한 환경에서 더 나은 서비스로 승부해 가장 신뢰할 수 있고 투명한 사업자로서 블록체인 시장을 리드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인터뷰 | 알렉산더 드카첸코 VNX 창업자 겸 대표

한국은 블록체인 강국 … 벤처투자 파트너로도 적격

Q 한국과의 인연을 계속 키워 나가는 이유는.

A한국은 블록체인 분야 하나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다양한 기업 생태계를 보유하고 있다는데 주목했다. 세계 경제 규모도 12위 정도 되는 경제 강국인데다 IT인프라가 워낙 잘 갖춰져 있어 방문할 때마다 놀란다. 유럽은 상대적으로 스타트업 발전 속도가 더딘데 한국 스타트업은 생겨나서 바로 성장하는 속도가 매우 빠른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었다. 다만 우수한 한국 인재들과 기업들이 해외 시장 개척에서는 어려움을 겪는 사례를 많이 봤다. 그래서 함께 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손을 내밀었다.

Q 한국에서는 펀드 유동화란 개념이 생소하다.

A 아무래도 벤처 투자 환경이 유럽과 달라서 그럴듯 하다. 유럽, 특히 룩셈부르크에서는 벤처투자라고 딱히 찍어서 이 분야만 투자하지 않는다. 펀드 내에 성장성이 있는 기업부터 초기 스타트업 지분까지 함께 투자돼 있는 사례가 많다. 이러다보면 펀드 내 어떤 회사는 빨리 성장해서 기업가치가 높아져 있고 어떤 회사는 좀 성장세가 떨어지기도 한다. 또 해지까지 기간이 긴 반면 중간에 돈이 필요할 때 바로 투자금 회수(Exit)하기기 쉽지 않다. 그래서 이런 펀드를 쪼개 팔 수 있게 토큰처럼 만들자는 아이디어에서 VNX가 출발한 것이다. 룩셈부르크 정부에서도 상당히 이 부분에 대해 공감을 많이 해줬고 스카이프 공동 창업자(COO) 출신 유력 투자자도 자금을 넣는 등 기대를 한몸에 받은 이유다. 한국도 개인이 벤처투자를 하려면 정보 얻기도 쉽지않고 투자방법도 어려운데 국적 불문 토큰을 사고 파는 개념이니 앞으로 한국 일반투자자도 국내외 벤처기업에 쉽게 투자하는 길이 열린 셈이다.

Q 앞으로의 계획은

A 빠른 시일 내에 스트리미 프로젝트를 마무리지어 본격적인 거래를 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더불어 개인적으로 운용하고 있는 벤처투자 회사 ‘2be.lu’도 한국 비중을 늘릴 생각이다. 1호 펀드는 1200만 유로(약 130억 누적투자) 정도 투자했고 모두 유럽과 싱가포르에 위치한 초기 스타트업(early stage)이다. 투비루 2호 펀드는 내년 상반기에 300 억원 규모로 늘리려 하고 있는데 이중 15% 는 무조건 한국 기업에 투자를 하고자 한다. 따라서 한국 쪽 투자자에게도 문호를 개방하고 전략적 파트너를 찾아서 함께 유럽 진출도 시키고 투자 유치도 해주는 역할을 할 계획이다. 예를 들면 꾸준히 키우고 있는 ‘Sprii’란 스타트업은 중동에서 급부상 하는 제 1의 e커머스 회사인데 한국의 미디어커머스 회사, 제조업체와 언제든 협업을 할 수 있게 다리를 놓을 수 있게 하는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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